트럼프 '관세 폭탄' 강행…'무역 전쟁' 서막 올랐다
우려했던 관세 폭탄이 끝내 현실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철강.알루미늄 업종 노동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15일 후 발효되는데, 수입 철강에는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가 각각 부과된다. 현재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부과가 면제됐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NAFTA 재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는 면제 지위가 박탈된다. 외국뿐만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강력히 반대하는 가운데 강행한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에서 "오늘 취하는 행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안보상 필요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달 초 표명했던 '무차별적 관세 부과'의 입장에서는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캐나다와 멕시코 외에 일부 국가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면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며 국가에 따라 유연하게 대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 실제로 이날 오전 열린 각료회의에서 현재 대미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호주를 직접 거론하며 관세 면제 국가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으며, 트위터에서는 "우리의 진정한 친구들과 우리를 무역과 군사 양면에서 공정하게 대우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커다란 융통성과 협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법은 미국의 안보 침해라는 잣대를 이용해 대통령 직권으로 특정 수입품에 무역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를 고려해 특정 국가를 면제하거나 면제 지위를 박탈하는 것도 가능하며 개별 국가에 대한 세율 조정 권한도 있다. 한국 정부는 행정명령 서명 이전에 면제 국가에 포함되기 위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 등 행정부와 의회 인사를 대상으로 설득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일단 한국산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기준 미국 내 수입 철강제 시장점유율에서 한국은 10.2%를 기록해 캐나다(16.1%).브라질(13%)에 이어 세 번째였다. 다만 15일의 유예 기간 동안 혹은 그 이후에도 면제국 지정은 가능하기 때문에 한.미안보동맹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무기로 강력한 로비를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그 후원자들, 그리고 산업계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어 의회 입법을 통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화당 연방의원 107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의도치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폭넓은 관세 구상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폴 라이언(공화.위스콘신) 하원의장도 성명을 내고 "무역 전쟁의 결과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의회전문지 '더 힐'은 제프 플레이크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행정명령을 무효화하는 법안을 상원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8일 보도했다. 내부적으로는 개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이 문제로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다 사임하기로 했으며, 석유 재벌로 공화당의 최대 후원자인 '코크 형제'의 찰스 코크(83)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자유무역은 우리 사회의 번영에 필수적이며 우리들의 삶을 향상시킨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은 경제적.문화적으로 미국에 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또 주요 교역국의 보복 관세 부과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 등 다른 산업 부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무역 보복을 예고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를 결정한다면 '미국적인' 3개 품목(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켄터키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을 찍어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수입 철강.알루미늄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자동차.가전제품 제조업체도 원가 상승 압박을 호소하고 있으며, 높아질 제품 가격으로 최종적인 부담을 안게 되는 소비자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관련 산업의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가 오히려 미국 내 다른 일자리를 줄어들게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컨설팅 기업인 트레이드파트너십은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관세 부과로 철강.알루미늄 산업에 3만3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나겠지만 연관 산업에선 총 17만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최근 사설에서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2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철강 가격이 오르면 많은 제조업자가 생산지를 해외로 옮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